소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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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蕭, 邵)씨는 한국 및 중국의 성씨이다.


깨어날 소 蘇[편집]

한국[편집]

(蘇)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9,55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69위이다. 본관은 진주 소씨(晋州 蘇氏) 단본이다.

요임금의 후손인 기곤오가 소성의 하백에 봉해지고 기원전2266년 소성이 단군조선에 영속되었으며 기씨를 소씨로 고쳐서 소씨가 생겼다고 한다. 소곤오(기곤오)의 후손이 신라 6부 촌장 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라고 전해지나 후대의 윤색으로 여겨진다.

진주 소씨의 시조는 소벌도리의 25세손이며 진덕여왕 때의 상대등인 소경이다. 소경은 진골귀족의 수장으로서 왕이 될 수 있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진주로 낙향하여 우리의 직계조상이 되었다. 신라는 엄격한 신분사회로써 각각 신분에 따라 옷 색이 다르고 집 크기가 다르며 관직을 맡을 한계가 있었다. 왕은 부계 모계 모두 왕족인 성골이어야 하고 최고 관직인 상대등, 각간은 한쪽만 왕족인 진골이 아니면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26대 진평왕에 이르러 성골 남자는 아무도 없어 할 수 없이 성골 여자 선덕여왕이 생겼으며 또 그 뒤를 사촌동생 진덕여왕이 계승하게 되었다. 진덕여왕은 진골귀족 중 최고 서열과 전공(戰功)이 뛰어난 소경을 상대등으로 삼고 국정을 주도케 하였다. 진덕여왕이 승하하자 이제는 진골 중에서 왕을 추대할 수밖에 없는데 77세의 소경은 이때 신노(身老)하다 하여 젊은 진골 중 국제적 명성이 있는 김춘추를 대신 추천함으로써 태종무열왕이 되게 하였다. 태종무열왕은 소경의 덕행에 보답하는 뜻으로 소경의 24대조인 소벌도리를 문열왕(文烈王)으로 추봉하였다. 15세손 소계령은 고려 헌종 때 이부상서가 되었으며 딸이 회순왕후(懷純王后)로 봉해져 진산부원군이 되었고 그 후 원종2년에 무숭공(戊崇公)께서 진주로 관향을 공인받게 되었다.

『진주소씨족보』(1935)나 『씨족원류』에 의하면 진주 소씨의 시조는 고려 말기의 소희철(蘇希哲)이다. 소희철(蘇希哲)은 상호군(上護軍)이었으며, 소희철의 후손 소세량(蘇世良)은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이었다. 소세량의 아우 소세양(蘇世讓)도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찬성(贊成)과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고 문정(文靖)이란 시호를 받았다.

중국[편집]

(蘇, 병음 Su)씨는 중국 성씨 순위 41위이며, 대략 7가지 계통이 있다. 초나라에 병합된 소나라,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 북위 선비족 3가지 계통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위구르과 유사한 유고족(裕固族), 이족, 창족등이 창성했다고 한다. 인물로는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있다.

베트남[편집]

Tô(또)씨

나라 소 邵[편집]

(邵, 병음 Hao)씨는 한국 및 중국의 성씨이다. 주나라, 관직명, 초나라, 기타 소수민족등을 포함하여 7가지 정도의 계통이 있다고 한다. 소옹(邵雍)은 주나라 소공의 후손인데, 召자가 전하여 邵자로 되었다고 한다.

소(邵)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904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진주, 익산(益山), 평산(平山) 등 16본이다.

역사 인물로 고려의 문신 소태보(邵台輔)가 있으나 본관은 알 수 없다. 소태보는 고려 문종 말에 호부시랑을 거쳐 선종 때 여러 요직을 역임하고 헌종 때 이자의(李資義)의 난을 사전에 분쇄하여 수사도판리부사(守司徒判吏部事)에 올랐으며 숙종 때 수태사(守太師)가 되어 협모공신(協謀功臣)의 호를 받았다.

맑은대쑥 소 蕭[편집]

(蕭, 병음 Xiao)는 중국의 성씨로 다양한 계통이 있다. 그 가운데 영성 계열도 있다. 요나라(거란) 예지황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황후들이 소(蕭)씨인데, 요나라 안에서 본래는 한가지 계통이었으나, 후에 최고 공족의 성을 야율(蕭) 두 성씨로 일원화하여 계통이 증가하였다. 고려가 거란과 전쟁, 교섭하였을 때 문헌에 등장하지만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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