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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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 曺, 租)씨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조 (趙 / 赵)[편집]

한국 趙氏[편집]

조(趙)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84,91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7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200여 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본관은 56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와 계대를 알 수 있는 본관은 풍양(豊壤)·한양(漢陽)·양주(楊州)·임천(林川)·배천(白川)·함안(咸安)·순창(淳昌)·횡성(橫城)·평양(平壤)·김제(金堤)·직산(稷山)·옥천(沃川) 등 20본이다. 조(趙)씨는 본관별로 시조와 유래가 다르고, 분적된 본관이 없기 때문에 동원동근(同源同根)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현종 때까지 동성이본도 통혼을 금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1] 한편,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서로 본관이 혼동되어 기록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2] 인구는 한양 조씨(31.2%)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함안 조씨(26.3%), 풍양 조씨(12.6%), 배천 조씨(6.7%), 옥천 조씨(5.1%), 평양 조씨(4.2%) 순이다.

  • 직산 조씨(稷山 趙氏) 시조 조성(趙成)은 백제 개국공신이다. 2000년 인구는 3,387명이다.
  • 풍양 조씨(豊壤 趙氏) 시조 조맹(趙孟)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로 풍양현(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천마산 동굴에 은둔하여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고 한다. 시조 이후 세계를 고증할 수 없어 조지린(趙之藺), 조신혁(趙臣赫), 조보(趙寶)를 각각 1세조로 하는 3계파가 있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이다. 2000년 인구는 113,798명이다.
  • 함안 조씨(咸安 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는 원래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동래하였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259,196명이다.
  • 순창 조씨(淳昌 趙氏)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 때 순창호장(淳昌戶長)을 지냈다. 그의 5세손인 조인평(趙仁平)이 1177년(명종 7)에 망이·망소이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금오위낭장(金吾衛郎將),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2000년 인구는 17,923명이다.
  • 배천 조씨(白川 趙氏)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본명은 조유고(趙惟固)이고 태조 조광윤의 차남 조덕소(趙德昭)의 아들이다. 979년(고려 경종 4년) 난을 피해 고려로 들어와 황해도 배천에 정착하였고,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66,155명이다.
  • 임천 조씨(林川 趙氏) 시조 조천혁(趙天赫)은 본명은 조수강(趙守康)이고 송 태조 조광윤의 손자인 기왕(冀王) 조유길(趙惟吉)의 다섯째 아들이라 한다. 그는 송나라에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이 되었으나, 979년 조광의(趙匡義)가 황위를 찬탈한 이후 고려로 도망쳐 와서 임천(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11,040명이다.
  • 옥천 조씨(玉川 趙氏) 시조 조장(趙璋)은 고려시대 광록대부(光祿大夫)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옥천(玉川)은 전라북도 순창군(順昌)의 별칭으로 순창군지(順昌君誌)에 조장과 그의 아들 조전(趙佺)에 관한 내용이 보인다. 2000년 인구는 49,847명이다.
  • 양주 조씨(楊州 趙氏)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후기에 호장(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추증되었다. 2000년 인구는 23,942명이다.
  • 김제 조씨(金堤 趙氏) 시조 조연벽(趙連壁)은 고려 고종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4,509명이다.
  • 한양 조씨(漢陽 趙氏)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 : 현 함경남도 문천시, 원산시 일대)에 세거해 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고려 조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냈다. 그의 독자 조휘(趙暉)의 후손들이 쌍성총관부의 총관을 계승했다. 고려 왕족이라는 설도 있다.[3][4] 후손들이 조선이 개국하자 한양(漢陽)으로 이거하여 한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2000년 인구는 307,746명이다.
  • 신창 조씨(新昌 趙氏) 시조 조영규(趙英珪)는 조선 개국공신이다. 이방원을 도와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중국 赵姓[편집]

조(赵, Zhào)씨는 주나라 목왕산융 지역 산시성 호족 조보(造父)가 진(晉)나라에 속하였던 조(趙)에 봉해져 후에 조(趙)나라가 되므로 자손들이 성으로 삼았고, 조 무령왕이 유명하다.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는 진나라 태자를 괴롭힌 죄로 진나라에 의해 수도 조나라 한단이 불태워지면서 멸망했다. 조고(趙高)는 진(秦)나라 환관으로 진나라 멸망의 계기가 되었다. 백가성(百家姓) 1위.

조(赵, Zhào) 성은 중국 국가 통계국의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조사(第六次全國人口普查)에서 약 2,750만 명으로 조사되었다. 중국 성씨 인구 순위 7위이며, 중국 인구의 2.29%를 차지한다.

무리 조 (曺 / 曹)[편집]

한국 曺氏[편집]

조(曺)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62,81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7위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청양·강릉·함평·가흥(嘉興)·능성(陵城)·영암(靈巖)·영광·장흥(長興)·화순 등 20본이 있다. 대본은 창녕 조씨이다.

창녕 조씨(昌寧曺氏)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조에 예향(禮香)이라는 여성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이에게 진평왕은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으로 지어주었으며, 성장하여 진평왕의 부마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曹姓[편집]

조(曹, Cáo)씨는 초나라, 주나라, 소그드인 계통이 있다. 초나라 조(曹)씨는 (妘)씨에서 파생된 성씨로 전한다. 주무왕(周武王)의 동생 진탁(振鐸)이 조(曹)나라에 봉해져 후손들이 (曹)을 성으로 하였다. 소그드인 사용하는 9가지 성씨 가운데 (曹)씨가 있다. 인물로는 서초의 장령 조구(曹咎), 후한 재상 조조(曹操), 삼국시대 위나라 개국자 조비(曹丕)등이 있다. 백가성(百家姓) 26위, 2013년 기준 30위의 성이다.

조세 조 租[편집]

조(租)씨는 한국 고대 토성이다. 7세기 신라-가야 출신의 백제 관료 조미압(租未押)이 있었다. 조미압은 종발성, 현재 부산의 현령이었다고 한다. 조세 조(租)씨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초기 한국의 토착 호족들이 유사한 성씨,다른 성씨로 바꾼 경우가 있다.

각주

  1.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48> 조(趙)씨와 한양조씨, 세계일보, 2013-05-01
  2. "봉릉 도감에서 성릉 안에 고려조의 재상인 조맹의 묘가 있으니 옮길 것을 청하다" 여기에는 조맹(趙孟)이 한양조씨의 시조로 기록되어있다. 조맹은 풍양조씨의 시조이다.
  3. 고려사 조돈(趙暾) 전(傳)에서 일문이 모두 봉군되기에 이르었다.(一門以全 位至封君)라는 내용이 있는데 일문이란 일가친척을 가리키고, 때로는 조상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일문이 모두 봉군되려면 그 집안은 왕족이거나 왕족에 버금가는 귀족 가문일 수 밖에 없다. 또한 태조실록에도 나해(那海)는 그 어머니 조씨가 고려의 왕족으로써(那海以其母趙氏 高麗王族)이라는 내용이 있다.
  4. 쌍성총관부에 대한 연구 성과와 반성, 고려시대 성씨의 유동성에서도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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