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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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鄒)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가을 추 秋[편집]

(秋, 병음 : Qiu)씨는 중국 제나라 환공(桓公)의 대부(大夫) 중손추(仲孫湫) 아들 추호(湫胡)가 추(湫)를 추(秋)로 바꾸어 생겨난 성씨이다.

(秋)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54,66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64위이다. 본관은 전주(全州)·달성·나주(羅州)·개성(開城)·강화(江華)·파평(坡平) 등이 있으나 대종인 추계 추씨전주 추씨의 동원분파(同源分派)이다.

추계 추씨(秋溪 秋氏)의 시조 추엽(秋饁)은 중국 송나라 고종 때 사람으로 114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을 이끌고 함흥 연화도(蓮花島)에 정착하여 한국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추엽의 아들인 추황(秋篁)은 고려 희종 5년(1209년) 진사시에 장원 급제하고, 몽골의 침략으로 1232년(고종 19년)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항전하던 비상 시대에 임금을 잘 모신 공으로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명유(名儒) 우대정책에 힘입어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기 때문에 이학종사(理學宗師)로 추앙받았다.

추황의 자제로 태어난 3세조 노당(露堂) 추적(秋適)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충선왕 2년에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오른 명신이다. 추적(秋適)은 국학 경사(經史) 교수로 있을 때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한 편찬자로도 유명하다.[1]

추적의 손자인 추유(秋濡)가 중국으로 귀환하여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었다. 추유(秋濡)의 5대손인 추수경(秋水鏡)은 중국 귀주성(貴州省) 오현군(五賢郡) 출신으로 1591년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조선에 파병되어 공을 세운 후 전주에 정착하였고, 완산부원군에 추봉되면서 전주 추씨로 분적하였다.

추나라 추 鄒[편집]

(鄒, 병음 : Zou)씨는 중국 범양에서 계출된 성씨로 전한다. 추(鄒)씨는 중국 백가성 제35위이다. 인물로는 한나라 헌제(獻帝) 때 어양태수(漁陽太守)를 지낸 추단(鄒丹)이 있다.

추(鄒)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42명으로 조사되었다. 역사 인물로 고구려 대무신왕 때 남부사자(南部使者), 비류부장(沸流部長) 추발소(鄒勃素), 후백제 견훤의 부장 추허조(鄒許組)가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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